오늘은 국제 연합의 장 행사가 열리는 날이다. 그와 더불어 백월의 독립에 대한 토론이 있을 예정이다. 원래 토론에는 장관급의 인사가 참여해야 하나 무슨 이유에선지 황제폐하께서 애라하 대위를 보내겠다고 하여 지금 나와 애라하 대위는 이곳에 오게 되었다.
각 나라 대표들이 자리한 오찬장에서 나와 애라하는 한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애라하 대위는 음식엔 손도 대지 않은 채 두리번거렸다. 난 입 안의 고기 한 점을 분쇄시키며 애라하 대위에게 말을 걸었다.
“안 먹고 뭐 하십니까? 음식 식습니다.”
애라하 대위는 예의 행동을 그치지 않은 채 입만 움직여 대답했다.
“야마토의 대표 녀석을 찾고 있어. 아, 찾았다.”
애라하 대위는 손끝으로 야마토의 대표 녀석을 가리켰다. 하지만 이내 손을 내려버려 누가 대표 녀석인지 보지 못했다. 아마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인가보다.
“이번 토론에 있어서 최대의 적이야.”
애라하 대위는 그제서야 접시에 담긴 미트볼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절대로 져선 안 돼. 반드시 독립을 받아내고야 말겠어.”
접시에 담긴 음식들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그녀는 일종의 자기암시를 했다.
오찬이 끝나고 토론장에 들어갔다. 가운데엔 서기 두 명이 낮은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토론 내용을 받아 적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 주위로 둥글게 각 나라 대표들이 자리했다. 야마토는 백월의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백월 측에 있는 애라하를 보았다. 그녀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계속해서 무언가 적고 있었다. 뭘 적고 있는 거지.
애라하 대위가 계속해서 무언가 써내려가는 도중 토론의장이 토론 개최를 선언했다. 그러자 고개를 처박고 있던 그녀는 미어캣마냥 재빠르게 고개를 들더니 귀빈석에 앉아 있던 나와 눈을 마주쳤다. 보아하니 많이 긴장한 모양이다. 난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미소를 지어주었고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긴장한 표정이었던 그녀도 나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이내 앞을 보고 앉아 토론 준비를 했다.
토론은 각 대표들이 돌아가면서 한 가지씩 토론 주제를 던지면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행사의 주제가 국제 연합인 만큼 토론들의 주제 또한 그에 걸맞은 내용들이 많았다. 그러나 의외인 점도 있었다. 야마토의 토론 주제가 백월과 무관한 내용이었다는 것. 백월뿐만이 아닌 다른 식민지 국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은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나라도 야마토에 대해 비판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의 만행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야마토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나라들마저 언급을 피했다. 타국을 힘으로 제압해 식민 지배를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다. 그리고 그 행위를 야마토는 하고 있다. 하지만 그 행동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다. 단 한 명도.
혼자 푸념하는 사이 어느새 백월의 차례가 되었다. 토론의 주제는….
“…백월을 비롯한 피식민국들의 독립입니다.”
그러자 토론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귀빈석에 앉아 있던 나도 조금 당황했다. 원래 백월의 독립에 관한 것만 준비해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마도 방금 쓰던 게 그것이었나 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애라하 대위는 야마토의 대표를 똑바로 쳐다보며 자신이 제시한 토론 주제를 착실히 발표해나갔다. 점점 분위기가 고조되어가는 가운데 야마토의 대표는 연신 하품을 해대며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이내 귀에 꽂은 이어폰을 빼버렸다. 이는 더 이상 이야기를 듣지 않겠다는 소리다. 하지만 의장은 이를 제지하기는커녕 아직 애라하 대위가 발표할 시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주제로 넘기려 했다.
꽝.
그 순간 갑자기 애라하가 책상을 내려치면서 일어났다. 그녀는 이어폰을 뽑더니 야마토어로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가 언제까지고 당신네들이 행하는 짓거리들을 보고만 있을 줄 아나본데, 이거 하나만 기억해둬! 당신네가 앗아간 모든 것들.”
애라하 대위는 오른손을 들더니 손가락 두 개를 펴보였다.
“두 배로 갚아주겠어.”
야마토의 대표는 기세에 눌리지 않고 예의 거만함을 유지한 채 대답했다.
“그럴 능력이 있다면 그렇게 해. 독립? 힘을 키운 다음에나 그런 소릴 하시지. 너희가 우리를 이길 수 있다면 얼마든지 시켜줄게, 독립인지 뭔지를 말이야.”
곧이어 평생 잊지 못할 말을 듣게 되었다.
“그 말, 접수했어.”
어느새 오른손은 검지를 제외한 손가락들이 모두 접히고 그 끝은 야마토의 대표를 향하고 있었다.
삐이-
발표시간이 끝난 애라하 대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기 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야마토의 대표는 애라하의 거만한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표정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애라하는 그렇지 않았는지 나를 향해 끝내주는 미소를 날려주었다.
잘하셨습니다, 애라하 대위님.
훗날 이 토론은 전후 영토 협정 때 피식민국가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였고 야마토의 발언으로 인해 모든 피식민국가가 독립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