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내가 군대 있을 때 즐겁게 플레이했던 아이온을 추억하며 군 인트라넷에 올렸던 글들이다. 원본은 원래 인트라넷에 올렸던 글인데 이대로 없어지는 건 아쉬워서 노트에 일일이 손으로 다시 받아적었고, 10년이 지난 오늘에야 그 노트를 다시 발견해서 이렇게 다시 인터넷에다가 글로 남겨보려 한다.
곧 있으면 오픈하는 아이온 클래식을 기다리면서 그 당시 향수를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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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라넷에 올렸던 글인데 이대로 없어지는 게 너무 아쉬워서 이곳에 옮겨 적으려 한다.
입대하기 전에도 그랬고 입대하고 나서도 계속 즐기고 있는 아이온. 그 동안 아이온을 하면서 다른 게임에선 경험하지 못한 많은 추억들이 있는데요. 그 중에 가장 충격적이면서 즐거웠던 에피소드를 한번 끄적여보려 합니다. 야간조장 서면서 너무 졸려가지고 잠 좀 깰 겸 쓰는 거니 재미없어도 너무 뭐라 하진 말아주세요.
08년도 11월. 아이온이 오픈베타를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유료화가 되죠. 사실 제가 게임학과인지라 게임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는 놈인데 MMORPG 중 가장 잘 나가는 게임이었던 와우를 접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아, 와우 방식의 게임은 꼭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엔씨소프트의 아이온이 출시되었습니다. 좀 고민되더군요. 보통 전 게임을 할 때 이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그래픽부터 보는 성격이라서요. 와우에 비하면 아이온이 캐릭터도 쭉빵하고 그래픽도 좀 더 분위기가 밝고 깔끔하더군요. 그리고 '기왕이면 국산 게임을 이용해주자' 하는 마음에 아이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전 RPG를 시작하면 대부분 레인저 캐릭터를 키우는지라 아이온에서도 궁성을 하기 위해 천족 정찰자를 만듭니다. 아오 근데 이놈의 정찰자가 초반에 좀 힘들어야지요. 케루빔한테 몇 번을 뒈졌는지 모릅니다. 과감히 접고 전사 캐릭터를 생성합니다.
저의 아이온 인생은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정찰자에 비해 전사가 확실히 키우기가 쉽더군요. 대충 키우다 보니 데바로 전직할 수 있는 레벨에 도달했습니다.
수호성이냐, 검성이냐.
수호성에 대한 내용을 NPC가 쭈욱 얘기해 주는 걸 보니 상당히 골치 아플 것 같더군요. 세상에 리딩이라니. 이건 좀 힘들 것 같고. 검성을 눌러보니 '강인한 체력과 강력한 공격력을 지닌 클래스.' 여기에 혹해서 주저하지 않고 검성을 선택했습죠.
다시 한번 제 아이온 인생이 꼬이는 순간이었습니다.
검성 가지고 어느 정도 레벨에 도달하고, 레기온도 가입하고, 돈도 많이 벌고, 거기에 친구까지 꼬드겨서 아이온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세 달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전 어느새 그 동안 모은 키나가 3천만 키나에 육박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3천만이면 현으로 1만5천 원 정도밖에 안 되는데 그 당시엔 15만 원 정도로, 현재 시가로 따지면 약 3억 원의 키나를 가지고 있었죠.
그 당시 대세는 쌍수! 공속 19%짜리 검을 양손에 장착하면 지금과는 달리 공속이 중첩 적용되어 38%의 공속이 향상됐었죠. 그냥 말 그대로 사기인데 저라고 안 맞추고 싶었겠습니까? 바로 도전을 했죠. 아는 사람한테 '강한소녀'라는 무기 달인을 소개받고 천천히 작업에 돌입합니다.
40렙제 '달인의 빛나는 강화 아다만티움 장검'x2가 저의 목표였어요. 저게 당시엔 자루당 5천만 정도 하는 상당히 고가의 장비였는데 이게 사려면 5천만이고, 만드는 덴 약 천만 키나 정도뿐이 안 들더군요. 현재 있는 돈으론 만드는 게 살 길이라고 생각한 저는 달빛장검 한 자루를 만들기 위해 재료를 비볐습니다. 달빛장검을 비비려면 그 전 단계에 있는 녹템장검을 파템으로 띄워야 했는데요. 이 녹템 장검 5자루를 만들 수 있는 재료를 다 준비해놓고 드디어 본격적인 제작에 돌입합니다. 두 자루는 제가 지르기로 하고 나머지 세 자루는 강한소녀 님한테 맡기고 돌리기 시작했죠.
아오 빡쳐 다 날려먹었어요. 안 뜬 거 상점에 다시 넘기니 도로 3천만이 만들어지더군요.
강한소녀 님과 저는 내일을 기약하고 일단 접속을 종료합니다. 그 시각이 아침 6시더군요.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오후 2시. 일어나자마자 아이온에 접속하고 캐릭터를 선택하려는데, 읭? 제 45렙 검성 '시나노'가 옷을 벗고 있는 겁니다. 처음엔 뭔가 싶었습니다. '이상하네. 난 분명 옷을 입혀놓고 나갔을 텐데.' 설마 하는 마음에 캐릭터를 선택하고 시작 버튼을 눌렀습니다. 아이온 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처음에 캐릭터 선택하고 시작 누르면 로딩화면에 캐릭터가 있는 맵의 일러스트가 뜹니다. 헐, 포에타가 로딩화면. 전 그 순간까지도 믿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캐릭터의 모습을 보고 아이템창을 열어보니 안 믿을 수가 없더군요. 키나는 0일 카리키고 아이템창엔 팔리지도, 갈리지도 않는 어비스 장갑 하나 남아 있고, 달로슝의 날개짓, 이걸 처음 샀을 당시엔 현금 7만 원에 호가할 정도의 고가였는데 날개마저 사라져 있고, 장비는 딱히 말할 것도 없이 싹~ 사라졌더군요. 그나마 다행인 건 균갑 스티그마를 박아놨었는데 그건 안 빼갔더라고요.
착잡한 마음에 레기온창에 글을 썼어요.
시나노: 헐 해킹당했음 ;
몇몇 분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는데, 한 놈만은 아니더군요.
드웦이라능 님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온 하라고 꼬드겼던 친구놈만은 싱글벙글이더군요. 하지만 이내 사태파악은 됐는지 이것저것 물어봐줬어요. 전 그래서 일단 창고를 봐야겠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포에타엔 창고가 없잖아요. 최소한 베르테론이라도 가야 하는데, 그러고 보니 키나가 없네요. 친구놈한테 5만 키나를 특급우편으로 받고 바로 베르테론으로 갔습니다. 창고 만져보니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털다가 만 흔적이 보였습니다. 근데 이게 좀 골 때리는 게 비싼 걸 골라서 빼간 게 아니더군요. 그냥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쭈욱 빼갔습니다. 이건 아무리봐도 짱개라고밖엔 생각이 안 들더군요.
창고까지 확인한 저는 바로 엔씨 고객센터에 신고를 했습니다. 하도 애착이 가는 캐릭이라 해킹당한 아이템을 기재하는 란에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기입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신고까지 하고 나니 갑자기 엄청난 허탈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입대하기 전까지 진짜 한번 제대로 미쳐볼 작정으로 죽어라 달렸는데, 설마 이렇게 하루아침에 사라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으니까요. 하루이틀은 정말 우울하게 보냈습니다. 당장 목표가 사라졌으니...
그렇다고 이대로 앉아 있기만 하긴 뭐해서 그날부터 치유성을 키우기 시작합니다. 당시 치유성은 치유신이라 불리던 시절이었던... 근데 이걸 또 처음부터 키우려니 토나오더라고요. 장비도 없고. 그래서 하나하나 정리해보기 시작합니다.
다행히도 해킹당하기 전에 친구놈한테 500만을 빌려준 게 있었어요. 500만 받고 균갑까지 팔아서 900만. 아는 레기온 형한테 소켓 5칸짜리 유일 장갑 Get! 또 뭐 이것저것 파니까 대충 2천이 넘는 돈이 모였습니다. 사실 지금은 쥐젖만한 가치이지만 그 당시엔 꽤 비쌌던 사슬 25렙 유일로 싹 도배를 해버립니다. 거기에 33렙을 찍자마자 달빛사슬장화 신어서 이속 22%를 맞추고 구멍이란 구멍은 모조리 생75를 박아서 36렙에 피통이 5,100을 넘는 기염을 토하게 됩니다.(엘테넨의 샨두카에게 광역기를 맞고도 살아남았다는 후문이...)
하앍. 그래도 허전한 마음은 달랠 길이 없었다는...
치유 키우면서 중간중간 검성 캐릭을 들어가봤습니다. 들어가봤자 할 수 있는 것도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검성 캐릭터로 접속을 했다는... 그러다 결국 이 헐벗은 검성 캐릭터가 나중엔 평생 잊지 못할 득을 하게 됩니다.
치유성에 미쳐 살다가 문득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객센터에 신고했더니 15일 뒤에나 복구해준다고 하더군요. 근데 제가 해킹을 당한 그 시점으로부터 입대가 딱 14일 남은 때였어요. 즉, 엔씨 말대로 15일 뒤에 복구가 된다면 전 102보충대에서 이틀째를 맞이할 판이었습니다. '아오, 이러면 속상하지' 하는 마음에 친구놈에게 엔씨를 찾아가자고 설득합니다. 생각보다 쿨하게 친구놈은 승낙하게 되고 결국 엔씨를 찾아갑니다.
근데 이게 생각했던 것만큼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저랑 친구는 본사에 찾아가면 바로 복구를 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찾아간 거였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같은 말이었습니다. 15일만 기다리라고. 그래서 전 14일 뒤면 입대하는데 15일 뒤에나 복구를 해주면 너무 늦는 것 아니냐고 따지니 제 말을 듣고 있던 상담원은 '그건 고객님 사정이죠'라는 투로 말을 일단락 지어버리시더군요. 정말 어처구니가 없더라고요.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저와 친구. 전 간만에 만난지라 아쉬운 마음에 PC방이나 가자고 제의했습니다. 그런데 이놈이 돈 아깝다고 집에서 게임한다네요. 근데 뭐 어떡합니까. 돈 아끼고 집에서 게임하겠다는 놈을 좀팽이라고 놀리면서 PC방을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평소 같이 파티사냥을 하던 형에게 연락을 합니다. 제가 검성, 친구놈이 호법, 그리고 치유, 수호, 궁성, 마도 이렇게 6명이 다 같은 레기온이었는데, 입대하기 전까지 맨날 붙어다니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면서 친분도 두터워졌는데 생각해보니 한 번도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그땐 언제 한번 현모를 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되던 때였던지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치유성을 키우는 형한테 연락을 취합니다.
그땐 서로 핸드폰번호도 주고받긴 했는데 전화가 목적이 아니라 문자를 하기 위함이었어요. 그래서 그날 전화한 것도 사실 처음이었고요. 한 세 통 전화를 걸었나. 그제서야 전화를 받더군요. 자다가 깼는지 상당히 허스키한 목소리가... 왜 전화했냐고 묻길래 한번 만나고 싶다고 바로 말해버렸어요. 그랬더니 죨라 쿨하게 오라고 했고, 저희는 부천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사실 현모는 친구놈도 처음이고 저도 처음이었어요. 살면서 수많은 게임들을 접해봤고, 오래 즐겼던 게임들도 꽤 있었는데 그 동안 현모라는 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게임 상에선 형 동생 하면서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지만 정작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게 상당히 미묘하더군요. 그래도 한편으론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약 2시간 뒤 친구와 저는 부천에 도착합니다. 처음에 형이 말해준 장소로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타납디다. 전화 걸고 형 어디냐고 물으니 자기도 거기 앞이래요. 아무리 둘러봐도 그 형처럼 생긴 사람은 없는데 말이죠.
근데.
저 멀리서 웬 청년 하나가 막대사탕을 쭉쭉 빨면서 핸드폰을 들고 다가오는 겁니다. 제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음성과 사탕 빠는 청년의 목소리가 돌림노래마냥 들려오더군요. 그 첫인상이 어찌나 골때리던지 친구랑 한동안 소리 없이 죨라 웃었습니다. 저희가 생각했던 이미지하고는 완전 딴판이었거든요. 대충 통성명하고 근처 PC방으로 이동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형이 다른 형들한테도 연락을 했더라고요. 저는 말했다시피 입대가 14일 남았던 때였고, 제 친구도 제가 입대하고 약 20일 뒤에 따라서 입대하려던 때라 지금 아니면 못 만날 거라 생각했나 봅니다. 그렇게 평소 모이던 6명이 어찌저찌 다 모였습니다. 정말 한 명 한 명 볼 때마다 골때리더군요.
6명 외에도 다른 레기온 분들도 많이 오셨는데, 그 중엔 처음 저희가 불러냈던 형의 친형도 있었어요. 다 같이 모여가지고 고깃집에 들어갔는데, 헐퀴 정말 설마했는데 다들 만나니까 게임 얘기를 하더라고요. 현모 자체가 처음이기도 했고 모든 게 낯설던 터라 그 상황이 죨라 웃기더라는...
한참 웃고 떠들고 하면서 고기를 죨라 집어먹었는데, 제가 지금은 안 그렇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식욕이 끝내줬거든요. 고기가 익자마자 젓가락을 내밀어 한 점 한 점 고기를 인터셉트해 제 입으로 옮기기에 바빴는데, 옆에 있던 친구놈도 저와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더군요. 진짜 미친 듯이 먹고 있는데, 이상하게 처음 저희랑 만났던 치유성 형의 친형(이 분이 돈 다 내심)이 고기를 안 먹고 술만 먹데요?
'아, 이 형은 배가 별로 안 고픈가 보다. 술만 먹네.'
그렇게 생각하고는 전 계속해서 본업에 충실히 임했죠. 고기 계속 시키다가 더는 못 먹을 것 같아서 남아 있는 고기만 다 구웠는데, 불판 끄고 익은 고기를 그 형이 밥그릇에다가 차곡차곡 담더라고요.
'아, 이 형 죨라 자상하네.'
생각하고 전 그 형이 차곡차곡 고기를 담아둔 밥그릇을 빼앗아 그것마저 쳐묵쳐묵합니다.
왠지 그때 그 형 표정이 좀 씁쓸해보였는데, 전 그때까지도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몰랐어요.
2차로 감자탕집 가서 수다 떨다 PC방 갔다 헤어지고 집에 돌아왔는데요. 그때 시각이 아침 8시였을 거예요. 바로 씻고 잤죠. 오후에 일어나서 접속해보니 치유형이 접속해 있더라고요. '어제 현모 재밌었다'고 하니까 그 형이 갑자기 저 보고 '너 좀 쩐다'는 거예요. '아, 제가 좀 쩔죠' 그러니까 '너 왜 그렇게 잘 먹냐'고 묻더군요.
시나노(저): 그냥 뱃속에 거지가 들은 듯
미르사자(그 치유성 형): 야 어제 우리 형이 배가 죨라 고팠는데 니가 더 고파보여서 눈치보여가지고 못 먹었대
시나노: 헐 진짜요 ?
미르사자: 그래. 눈치보여도 좀 먹어둬야겠다 싶어서 남은 고기 다 익은 거 그릇에 옮겨놨는데 니가 그것마저 가져갔다는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술만 죨라 먹었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나노: 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한순간에 도그베이비가 되었다는...
나중에 들은 얘긴데 그 형은 그렇게 술만 퍼마시고 집에 와서 라면을 끓여드셨다고 합니다... 미르사자 형이 밥 먹고 온 거 아냐니고 물어보니 저 이야기를 해줬다네요 ㅎㅎ..
즐거웠던 현모를 끝내고 전 다시 아이온. 그 당시 세웠던 목표가 치유를 41까지 찍어서 크세노폰을 먹자는 거였습니다. 아오 근데 이게 쉬운 게 아니잖아요. 렙은 36. 남은 기간은 5일? 결국 36렙에 본진 파티 구하다가 파티 못 구하고 솔플 죨라 하다가 뒈지고, 완전 슬럼프였습니다.
할 게 없잖아요? 결국 전 또 헐벗고 있는 검성을 들어갑니다. 아오 빡쳐. 들어가봤자 아무것도 없는데 왜 맨날 들어가는 건지. 그나마 궁성 키우는 형이 벌거벗은 저를 보고,
공인탈세사(궁성 키우는 형): 야 이속 18퍼 신발 70만인데 이거라도 줄까?
시나노: ㄳ
공인탈세사 님께서 거래 요청을 하셨습니다.
>수락 거절
수락 클릭
거래가 완료되었습니다.
<달인의 가죽 어쩌구 신발>을 획득했습니다.
바로 영각.
이거 하나 신고 그냥 있었네요.
한참 동안 멍 때리고 있었는데 레기온 창을 보니 샨두카가 떴다는 거예요. 아 그때 그 심정 진짜 말로 다 표현 못함. 검성 키울 적에 샨두카 떴다 하면 제일 먼저 달려가서 달라붙던 저였는데 지금은 그저 앉아서 이속 18%짜리 신발 하나 차고 손가락이나 쪽쪽 빨고 있으니 완전 미칠 노릇이었습니다. 머릿속에서 이 생각 저 생각 드는데 갑자기 귓말 하나가 오더군요.
류와니 님의: 야 너 여기 와서 주사위나 굴려
현모 때 제가 고기 다 쳐묵해서 술만 빨고 고깃값은 다 자기가 냈는데 정작 자기는 집에 가서 라면 끓여먹었던 그 형이더군요.(형 미안 ㅋㅋ)
류와니 님에게: 제가 가봤자 뭐함 ; 먹지도 못할 거 ;
류와니 님의: 아냐 너 주사위 굴리면 먹을 거야 형 믿어 너 주사위 쩔잖아 ㅋㅋ
사실 그 당시 제 주사위는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상태였습니다. 주사위 99가 나온 형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주사위를 굴려 100이 나와 서버 최초로 나온 유일 판금 장갑을 획득한 전설이 잇을 정도였으니까요.
류와니 님에게: 근데 그거 만약에 먹는다고 해도 거기 모르는 사람 태반인데 좀 그렇잖아요 ;
그 형이 속해 있던 포스는 우리 레기온 사람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그냥 본진닥사하던 완전 생판 모르는 남이 대부분이었거든요. 그 사람들 재끼고 아이템 먹으면...
류와니 님의: 뭐 어때 그냥 와서 넌 주사위나 굴려
결국 전 설득당해 엘테넨에서 새 타고 아게이론으로 날아갔습니다. 아게이론에 도착해 느긋하게 본진까지 걸어가는데 갑자기 스피커에서 퍼버벅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어라?
그 소리와 함께 제 피통이 까이는 것이 보였고 그 옆에 살성이 나타났습니다.
어익후 C8
순삭당한 저는 기분이 꿀꿀해졌어요. 바로 검색해보니 어처구니가 없게도 살성의 렙은 40에 불과했습니다. 그 당시 만렙 45일 때 전 만렙이었는데, 게다가 살성 따위 크데창으로 낼름거리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쪽쪽 핥기만 해도 잡아버렸는데. 그런 살성한테 무방비 상태에서 당하니까 기분 무지 구리대요. 그래도 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달렸어요. 아놔 근데 이번엔 은신도 안 한 그놈이 다가오는 게 보이는 거예요.
발목잡기 걸었죠.
회피했어요.
또다시 순삭
시나노: 아오 슈X 짜증나네
저도 모르게 레기온창에 욕을 날려버렸어요. 그땐 레기온 사람들 대부분이 저보다 형이거나 누나였는데... 하도 열받아서 그 형한테 그냥 안 간다고 귓을 넣어드렸죠.
류와니 님에게: 형 저 그냥 안 갈래요 죨라 짜증나서 못 가겠심
류와니 님의: 겨우 그까짓거 가지고 그러냐 너 진짜 굴리면 먹을 수 있다니까?
결국 또 설득당한 저는 이번에 안 되면 안 간다고 말하고 다시 가기 시작합니다. 발목잡기의 쿨이 돌아왔고, 저는 질주 주문서를 빨았습니다. 이번에도 그 살성이 다가오는 게 보이더군요. 발목잡기 최대 사거리인 15m 내로 그 녀석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사실 저에겐 믿을 게 이거밖에 없었거든요. 방어구라곤 팔지 못하는 쓰레기 십부장 판금 장갑과 되도 않는 18%짜리 파템 이속신발... 무기도 없어서 맨손으로 죨라 뛰어가고 있는데 20미터까지 놈이 접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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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
쮜융(발목잡기 나갈 때 그 특유의 효과음 있잖아요 왜)
헐 히밤 발목이 잡혔어요!
그거 보자마자 돌격 스킬을 사용해 10초 동안 뒤도 안 돌아보고 죨라 뛰었죠. 지금까지 검성을 키우면서 이렇게 짜릿한 돌격 스킬은 경험해보지 못했던...
죨라 도망가는데 10초가 지나면 발목이 풀리잖아요. 근데 이놈이 살성이다 보니 저랑 간격이 점점 좁혀지더라고요. 아직 본진 입구까진 멀었는데. 죨라 벌벌 떨면서 '제발 살려줘'라는 마음으로 필사적인 도주를 펼쳤는데, 입구에 다다르니까 웬 치유가 하나 있더라고요.
'헐 제발 이놈 쳐라, 제발.'
치유하고 교차하고 전 용암길까지 필사적으로 뛰는데 살성이 다행히도 치유를 잡더라고요. 속으로 '치유님 땡큐'를 외치고 용암길로 Go. 내려가서 샨두카가 있는 벽 뒤에 멈추니까 마침 딱 샨두카가 죽더군요. 경험치 공짜로 받고 룻 기다리는데(이미 그땐 포스에 가입된 상태) 샨두카의 창 파템이랑 샨두카의 가면 유일이 떨어지더군요. 창이랑 가면이랑 둘 다 400만 키나 정도 했던지라 무지 군침 돌더라고요.
창 먼저 굴리길래 굴렸는데 아쉽게도 못 먹었어요. 대신 처음에 저 불렀던 그 형이 먹더라고요. ㅋㅋㅋㅋ. 레기온창에 그 형 막 좋아라 광고하고 난리도 아니었음(고기를 못 먹어서 그런가)
그리고 이제 가면을 굴릴 차례. 바로 굴렸죠.
시나노 님이 <샨두카의 가면>을 획득하셨습니다.
<샨두카의 가면>을 획득하셨습니다. (슈욱) ←효과음
헐퀴?
주사위를 굴린 저도 놀랬고 열심히 잡아놓고 허탕 친 사람들도 놀랬고 처음에 절 불렀던 그 형도 놀랬고.
류와니 님의: 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니 먹는다고 했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전 그 가면을 400만에 팔아치우고 치유성의 장비를 맞췄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장비는 남아서 제 치유의 몸이 되어주고 있답니다.
탱커형의 비애 ; -_ ㅡ ;
그냥 같이 댕겼던 형들 아이디랑 클래스 적어놓고 글 써야겠네요.
미르사자 - 치유성(처음 전화 걸어서 만났던 사탕 빠는 청년)
갈리토스 - 수호성(오늘의 주인공)
공인탈세사 - 궁성(이속 18% 신발 사줬던 형)
서린불 - 마도성(치유성 5소켓 장갑 사줬던 형)
드웦이라능 - 호법성(키 작은 캐릭터가 유행하기 전 드워프 외형의 키 작고 볍쉰 같은 캐릭터를 처음으로 만들어낸 친구놈)
시나노 - 검성(저인 듯)
하루는 저희끼리만 모여서는 좀 빡센 크랄투마그나를 가기로 했어요. 크랄투마그나는 천족의 필드던전인데요. 마족은 드라웁니르처럼 편한 인던이 있는 반면에 천족은 그 당시 45가 만렙이었는데 46~48레벨 나가들이 득실거리는 크랄투마그나가 최상위 템을 떨구는 필드던전이었어요. 근데 이 크랄투마그나가 그지 같은 게 한 파티만으로는 상당히 벅찬 곳이었어요. 몹도 세고, 개체수도 많고, 한 파티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죠. 네임드들도 상당히 강력했고요. 그래서 우리의 미르사자 형(이 형이 네임드랑 템에 미쳐 살았었죠)은 인맥을 총동원하기 시작하죠.
순식간에 24명의 인원이 모이게 되고, 저흰 그렇게 라비린토스 서버의 역사를 써나가게 됩니다. 좀 거창하게 썼는데 이게 과장만은 아닌 것이, 그 당시에 라비린토스 서버가 다른 서버들에 비해 네임드들을 공략하는 사람들이 전부 뒤쳐졌어요. 그도 그럴 것이 시엘 서버 같은 곳은 1서버이다 보니 네임드들이 그만큼 빠르게 평정됐는데, 저희 서버 같은 경우엔 나중에 생성된 서버라 늦을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이 포스 전에도 크랄투에 도전했다가 한번 개털린 적이 있었거든요. 미르형은 그게 못마땅했던 거예요. 다른 서버들은 다 하는데 왜 우리는 못하는 거야! 그래서 모인 포스. 천천히 길을 뚫으면서 자잘한 네임드들 하나하나 제거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대법사 브리슈나(아 이름이 이게 맞나?)를 만나게 되죠. 이름이야 어찌됐든 이 네임드는 광역기 때문에 상당히 껄끄러운 놈이었는데요. 아이온은 보통 범위가 넓어봤자 25미터인데 이놈은 이상하게 25미터가 넘었어요. 이 광역이 또 그냥 광역이냐? 그것도 아니에요. 무려 공중속박이에요. 걸리면 움직이지도 못하고 피만 계속 닳아요.
처음에 무작정 달려들었죠. 그리고 개털리고요. 많은 사람들이 포스에서 탈퇴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은 사람들도 지쳐가고 있었죠. 잡지도 못하고 계속 죽기만 했거든요. 다섯 번 연속. 이를 안타깝게 여긴 미르형은 그럼 이번 딱 한 번만 더 해보고 안 되면 가자더군요.
그렇게 결국 마지막 공격을 시도하는데 이게 어찌하다 보니, 진짜 어찌하다 보니 잡히더라고요. 저희도 모르는 새에. 다들 막 수고하셨다고 인사 죨라 날리면서 라비린토스 서버 최초 공략이라면서 즐거워했어요. 그리고 대망의 룻을 하는데(가기 전에 직주라고 하고 갔었어요.) 현무의 판금 장갑이 나오는 거예요.
별로 피부에 와닿지 않을 겁니다, 이름만 듣고는. 드라웁니르 템과는 다르게 크랄투마그나에서 나오는 아이템들(사신 아이템)은 영혼각인 아이템이었습니다. 거래가 가능한 아이템들이었죠. 각인만 안 하면 언제든지 팔 수 있는 아이템이에요. 그래서 당시엔 상당히 고가에 거래되었죠. 옵션도 좋았거든요. 현무 장갑 같은 경우엔 공속 8%(당시 공속 8% 장갑이 죨라 비쌌던), 생명력, 물방 옵이었어요. 그리고 렙제가 47. 만렙이 45인데 말이죠. 렙제만 빼고 본다면 정말 최고의 옵션이었어요.
저희 포스엔 8명의 판금들이 있었는데 거기엔 저도 포함되었고 우리의 탱커 갈리토스 형도 있었어요. 직주인 걸 알고 왔기에 다른 분들은 다 포기하셨고 판금끼리의 주사위 결투가 시작되었죠. 같잖은 숫자들이 막 지나가는데 갈리토스 형이 99가 나오는 거예요. 사실 갈리형이 그 동안 저희랑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템을 하나도 못 먹었거든요. 저흰 죨라 많이 먹었는데(특히 저) 유독 갈리형만 하나도 못 먹었으니까요. 99 나온 거 보고 '우와 죨라 축하한다'고 막 난리를 쳤죠.
축하해주고 있는데 주사위 남은 시간을 보니까 3초가 남았더라고요. 아고 안 굴리긴 아쉬울 것 같아서 그냥 굴렸는데,
100이 나오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바로 저한테 장갑 들어오고(철컥!) 다른 사람들은 다 놀래 자빠지고 그 형은 ㅡㅡ;만 날릴 뿐이고. 저도 죨라 황당했어요. 드디어 템 먹은 거 축하한다고 죨라 진심으로 축하해줬는데 저한테 들어왔으니.
그땐 해킹당하기 전이어서 입대하기까지 시간이 좀 남긴 했는데 그래도 만렙은 안 풀렸던 때인지라 별로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갈리형 불쌍해서. 그래서 먹자마자 바로 갈리형한테 거래 눌렀죠. 거래 받길래 장갑 턱하니 올렸더니 뭐냐면서 창 닫더라고요.
시나노: 그냥 형 먹으센 ;
갈리토스: 내가 왜 먹어 니 껀데 이거 팔아서 쌍수나 맞춰 요즘 쌍수 대세잖아
그 뒤로도 몇 번이나 가져가라고 했는데도 끝까지 안 받더라고요. 니 그거 팔아서 장비 맞추라면서... 그래서 결국 그냥 다른 사람한테 2천만에 팔아치우고 제 재산을 3천만까지 불려왔던 거였어요. 이 3천만이 이렇게 나온 거예요. 갈리형이 양보해줘서.
지금은 같이 게임하던 형들 중 반이 일 때문에 게임도 자주 못하더라고요. 원래 전역하면 아이온 접고 다른 게임 하려고 했는데 아직도 남아 있는 몇몇 분들 때문에 못 접겠더라고요. 그래서 전 그냥 전역하고 나서도 하려고 합니다, 아이온. 저 형들이 있는 한.
마족 마을을 돌파한 허접 검성의 험난한 여정
아이온 글은 정말 오랜만에 써보는 것 같네요. 이번 글이 예전만큼 흥할진 모르겠지만 일단 심심한 건 사실이니 한번 써보려 합니다.
참고로 제가 쓰는 아이온 이야기들은 전부 다 3월 3일 이전, 즉 3월 4일 만렙이 50으로 풀리기 전인 만렙 45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의 아이온과는 많이 다르니 그 점 유의하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매일마다 네임드를 잡으러 다니느라 바빴던 저를 포함한 6인의 변태팟. 네임드를 항상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잡는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템을 주리란 법도 없죠. 그래서 슬슬 질리기 시작했던 저희였습니다. 그러던 중 미르형이 새로운 사냥터를 가자고 제안하더군요. 그것은 바로 마족 땅 최강 인던, 드라웁니르였죠.
천족 최고 레벨의 사냥터는 필드―인던이 없죠― 크랄투마그나 동굴뿐이었던 그 시절. 마족 땅에 있는 드라웁니르는 상당히 매력적인 인던이었죠. 전에 썼던 글에도 잠시 언급한 적이 있듯이 크랄투마그나는 포스가 아닌 이상 네임드를 공략하기 어려운 곳이지만 드라웁니르는 한 파티만으로도 충분히 공략이 가능한―물론 군단장은 빡셌죠― 인던이었고, 아무래도 포스 인원 24명이 하나의 아이템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것보단 6명이서 템을 갈라먹는 게 더 쉽기도 해서 가는 여정이 매우 험난하지만 충분히 메리트가 있던 곳이었죠.
미르형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 또한 드라웁니르의 메리트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미르형의 제안을 반대할 수 없었죠. 그렇게 결국 저희는 그 제안에 동의하고 다음 날 오후 12시에 모여 드라웁 동굴을 가기로 약속합니다.
그날 새벽까지 게임을 하던 저는 새로운 인던을 들어간다는 설렘 때문에 잠을 설치게 되었고, 이게 화근이 되어 전 원치 않았던 대모험을 하게 됩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일어난 시각은 해가 중천에 떠 있던 오후 2시였죠.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란 저는 후다닥 컴퓨터를 부팅시킴과 동시에 핸드폰을 열었습니다. 부재중 통화 20여 건과 30여 건의 문자가 쌓여 있더군요. 컴퓨터 부팅되는 시간 동안 문자를 찬찬히 읽어보니,
'왜 안 오냐?'
'빨리 와라'
'안 오면 우리끼리 간다'
'진짜 간다?'
'우리 넘어왔다'
읽으면 읽을수록 참담해지더군요. 이윽고 부팅이 완료되고 바로 아이온에 접속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귓말 폭주하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지요.
드웦이라능 님의: 니가 아주 미쳤구나
들어오자마자 친구놈의 욕부터 눈에 띄었고, 다른 형들 또한 참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저를 농락해주었습니다. 불형이랑 미르형은 절 다그쳤고, 갈리형과 공인햄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였으며, 제 친구놈 드웦이라능은 귓속말로 계속해서 절 조롱했습니다. 뒤늦게 접속한 못난 동생이었지만 그래도 파티는 초대해주더군요. 하지만 파티 상태창에 있던 파티원들은 전부 다 벨루스란이었고, 지도상에 표시된 곳은 드라웁니르 입구 앞이었습니다.
사실 잘못한 건 저였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갑자기 울컥하더군요.
날 두고 가다니...
정말 가고 싶었던 인던인데 '고작 늦잠 따위를 자는 바람에 못 가게 되었구나'라는 생각과 '그 동안 쌓인 정이 얼만데 결국 날 버리고 가버렸구나' 하는 배신감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감정들이 뒤섞이는 가운데 피어난 감정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오기'였습니다.
파티 채팅창에 대고 선언했습니다.
시나노: 기다리셈 가겠음
이 말을 하니 다들 기겁을 하더군요. 껌성 혼자서 드라웁을 오겠다니―당시만 해도 검성은 껌성, 건성 등으로 부르던 시절이었고 시공도 지금처럼 직 시공 그딴 거 없었죠―.
하지만 철없는 동생의 이런 오기를 받아준 형들은 기다려준다고 약속하였고―친구놈만은 반대, 그냥 가자고 했음― 결국 그렇게 허접 껌성은 드라웁을 가기 위해 엄청난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우선 시공부터가 큰 문제였습니다. 직시공 따윈 없었고, 2시간마다 열리는 시공은 당시 드라웁의 큰 인기로 인해 혁명단―가장 가까운 시공―이랑 또 어디더라. 가까운 시공 있는데 그 두 곳은 열리자마자 없어지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 외의 시공들은 대부분은 마족 마을의 거지 같은 특성 때문에 마을을 돌파하지 않는 이상 드라웁까지 가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우선 한 5분 정도 전체 채팅으로 시공 제보 좀 해달라고 광고를 때렸고, 끝끝내 딱 하나 남아 있던 시공 하나를 제보 받게 되었습니다. 찍어준 곳의 시공을 보니 인테르디카 중앙쯤에 찍혀 있더군요―이땐 벨루스란 어디로 통하는 곳인지 모르고 있었음―. 고맙단 인사를 날림과 동시에 제보한 곳에 가보니 다행히 시공은 아직 남아 있었고, 전 곧바로 넘어갔어요.
마족 땅임을 알리는 로딩 화면이 끝나고 지도를 열어 위치를 확인해보니 드라웁니르하고는 완전 반대편인 벨루스란 처음 시작하는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지점이더군요.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길은 마족 마을뿐인데, 그 마을까지만 해도 상당한 거리였어요. 험난한 여정이 될 거란 생각을 하면서 팔려고 만들어놨던 라우피드 방패―파템인데 정신력 붙은 쓰레기 방패 있음. 200만 키나였나―를 영각합니다. 거기에 동급 쓰레기 파템 검 하나 꼬나쥐고 마족 마을을 향해 뛰어갔습니다.
근데 참 운도 없는 게 가다가 만난 첫 마족의 클래스가 하필 정령이더군요. 정령은 예나 지금이나 PvP에선 답이 없잖아요. 도망가려 했으나 사거리에 걸려 몇 대 얻어맞던 저는 끝까지 마족 정령한테 어떠한 공격 행위도 하지 않고 돌격까지 써가며 이 악 물고 앞으로 달려나갔습니다. 그리고 내달림과 동시에 Num Lock을 눌러 계속 달리게 한 뒤 Y를 눌러 상점말을 써넣기 시작합니다.
'님 제발 살려주세요 낙오돼서 혼자 드라웁 가고 있어염 ㅠ _ㅠ 제발 살려주세요 멋진 정령님 ㅠ_ㅜ'
평소 타자가 400이 못 넘는데 이때는 아마 800타 정도 나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의 타이핑을 마친 뒤 장사 시작. 장사를 시작함과 동시에 몇 대 더 맞아 상점이 풀리긴 했으나 그럴 때마다 다시 상점을 켰고, 조금 지나자 그 마족 정령의 공격도 멎더군요. 안 때리길래 계속 가만 있었더니 곧이어 그 정령도 상점을 열어 저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정령은 사정 잘 알겠다며 절 그냥 놓아주겠다고 했고, 전 연신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처음 만난 마족으로부터 별다른 피해 없이 벗어나게 됩니다.
정령과 헤어지고 한참 동안 걸어갔는데, 저희 섭이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천족 우세 서버였던지라 마족 보기가 힘들더군요. 가면서 오토는 몇 명 보았으나 유저가 너무 없길래 안심하며 가고 있는데 웬 동굴이 하나 있더라고요. 동굴에서 좀 떨어진 지점에다 키슥 하나 박아놓고 등록한 뒤 동굴로 다가갔습니다. 그냥 호기심에 들어간 동굴이었는데 하필 거기서 사냥을 하는 마족들이 있더라고요. 수호 하나랑 치유 하나였는데, 뒷모습 보고 놀래서 죨라 뛰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이놈들이 쫓아오는 겁니다. 놀래가지고 죨라 뛰다가 언덕에서 활강해가지고 밑으로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고 별 쌩쑈를 다 해서 다행히 한 대도 안 맞고 무사히 따돌리는 데 성공. 다시 마족 마을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마족 마을 앞에 당도하자 심장이 마구 뛰더군요. 여기만 넘으면 형들이 있는 곳까진 식은 죽 먹기. 주문서랑 음식 같은 간단한 도핑 후 마을에 입성했습니다.
그때 마족 마을을 처음 본 거였는데, 구조가 참 거지 같더군요. 2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아랫층엔 NPC와 유저가 쫙 깔려 있고 2층은 거미줄마냥 곳곳으로 뻗어나갔는데, 길들의 폭이 상당히 좁더군요. 거기에다 2층에도 NPC가 있어서 쉽게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이 아니면 갈 수 없으니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아 놔 근데 허접 호법 하나가 절 건드리더군요. 싸우면 질 것 같아서 평화노선을 유지하려고 호법 안 때리고 도망가려 했으나, 쳐발립니다.
키스크 부활하고 다시 마을로 입성. 그 호법이 절 기다리고 있더군요.
필사기를 발동했습니다.
발목잡기
너무나 쉽게 잡힌 발목.
발목 잡힌 거 보고 그 순간 제가 걸 수 있는 모든 도핑, 버프 다 켜고 마지막으로 돌격 쓰고 마족 NPC들을 무시한 채 달리기 시작합니다. 신나게 얻어맞았지만 어찌저찌 겨우 반대편 입구에 당도하게 되었고, 어느 정도 가다 보니 따라오던 NPC들도 더 이상 안 따라오는 것이 보이더군요.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저는 잠시 탐을 하고 다시 뛰기 시작합니다.
아오 멀다.
저의 생각은 들어맞았어요. 마을을 지나니 보이는 것이라곤 몬스터뿐이라 상당히 편하더군요. 계속 뛰고 뛰어서 결국 드라웁 근처에 출몰하는 용족들이 있는 사냥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거기까지 오니까 형들이 다들 놀래더군요. 징하다면서.
겨우 도착해서 기쁨의 눈믈을 흘리려는데 위치가 좀 이상하대요? 분명 드라웁 동굴하고는 무진장 가까운데 파티 상태창의 파티원들 아이디에 불이 안 들어오는 겁니다.
아니, 이렇게 가까운데?
주변을 둘러봤죠. 동굴이 웬 절벽 너머 언덕 위에 솟아 있는 게 보이더군요. 맵이 U자형이라면 드라웁은 오른쪽 꼭지에 있는 건데 전 왼쪽 꼭지에 도착해 있던 겁니다. 순간 좌절한 저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그러자 형들이 아래로 내려오라고 하더라고요. 여기까지 왔으니 우리가 거기로 마중 나가겠다고.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다시 내려갔습니다.
한참을 내려가는데 한동안 안 보였던 빨간 아이디의 마족들이 보이더군요. 정말 새빨갰습니다. 손도 못 쓰고 사망한 저는 형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부활 제한 30분 중 남은 시간을 바라보고 있는데, 시체 주변에 있던 마족들이 갑자기 막 도망가더라고요. 이제 나한텐 관심이 없는 건가 싶었는데 갑자기 렉이 걸리더니 천족 한 포스가 마족들을 쫓아가는 겁니다. 만세~ 아 이제 살았구나 싶었는데 매정하게도 그냥 지나가는 천족들. 부활 좀 걸어주면 어디가 덧나나.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부활 문구가 뜨는 겁니다. 바로 부활하고 살려준 사람을 보니까 같이 인던 좀 돌던 호법님이더군요. 죨라 고맙다고 하고 그 호법님이 속한 파티를 따라 드라웁을 향해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아 그런데 부휴 때문에 빨리 못 뛰겠더군요. 그 사이에 호법님 파티는 이미 저와 멀리 떨어져 버렸고, 전 숨어 있던 살성한테 다시 사망.... 결국 전 다시 차가운 바닥에 누워 파티원들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오는 길목에 마족이 많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는데 이게 참 똥줄 타더군요. 부활 제한 시간은 30분인데 3분이 남도록 파티원이 근처에도 못 오는 그때의 그 기분은 참... 2분에 접어들기 시작할 무렵 파티 상태창에 불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고, 겨우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기쁨은 말로 다 표현 못하죠. 형들도 전부 다 놀라고, 친구놈은 징한 놈이라며 계속 귓속말로 언어폭력을 행사했습니다. 드라웁 입구까지 올라가면서 정예몹 하나하나 처리하고 결국 드라웁 입구까지 당도했습니다. 이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건데 미르형이 재접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집에서 하니까 렉 걸린다면서 PC방에 간다면서요.
결국 그 형 기다리느라 옆에서 장사를 켜놓고―멋쟁이 오골계님들 제발 치지 마세요 등의 아부하는 글― 기다리는데 마족 한 팟이 올라오는 겁니다. 그래도 그 당시 아이온은 낭만이 존재하던 시절인지라 바로 공격하진 않았어요. 대신 치유신 한 분이 신성력 만땅인 상태로 저희를 보더니 장사글을 펼치시더군요.
'오골계? ㅎㅎ'
아, 제가 썼던 문구가 이 분을 화나게 만든 겁니다. 여차하면 신성 스킬이 날아들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당시 그거 맞으면 개털렸죠― 바로 장사글을 바꿨지요.
'멋쟁이 마족'으로.
그제서야 장사글 풀고 동굴로 입던하는 그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또 미르형을 기다리는데 또 마족 한 팟이 올라오는 겁니다. 이번에도 잘 좀 넘겨보자 생각하고 있는데 대뜸 마족 궁성이 절 때리더라고요. 당황해서 날개 펴고 언덕길 밑으로 쭉 내려가는데 그 사이에 불형은 이미 접속을 끊어버린 상태였고, 갈리형도 탈출, 저랑 친구놈만 뒈졋는데 친구놈은 그 근처에서 죽었지만 제가 좀 에라였죠. 정예몹이 젠되는 자리 바로 위에서 죽어가지고 구해주기도 힘든 자리였어요. 주변에서 마족들이 계속 대기 타느라 한 20분 정도 기다렸는데 겨우 상황 풀리고 미르형 들어와서 장장 2시간여 만에 드디어 드라웁에 들어가게 됩니다. 왜 이리 험난한 건지.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던전. 6시간이 지나도록 3넴드밖에 잡지 못한 저희는 미르형이 졸리다고 해서 결국 3넴드를 끝으로 팟쫑하게 됩니다.
지금 아이온에선 상상할 수 없는 정말 거지 같은 에피소드. 하지만 그래도 이때의 아이온이 스릴도 있고 더 정겨웠던 것 같아서, 가끔씩 아이온 생각할 때면 그리워지네요. 나중에 전역해서 아이온 할 때도 예전처럼 즐기면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예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