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
토론장에서 돌아오는 길. 우리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바로 내 앞에 어제의 주인공 애라하 대위가 잠들어 있다. 머리가 창문에 맞닿아 있어 계속해서 덜컹거린다. 이래선 뇌세포가 전멸하겠는걸. 창가 쪽으로 기울어진 머리를 조심스럽게 통로 쪽으로 옮겨놓았다. 그러자 이번엔 통로 쪽 좌석에 놓아두었던 여행용 가방에 머리를 부딪혔다. 꽤 아파보였는데도 용케 깨지 않는다. 그러게 제가 가방은 굳이 옆자리에 놓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상 외로 무게가 나가는 가방을 낑낑대며 겨우 선반 위에 올려놓고 있는데 역무원 하나가 쪽지 하나를 건네주고 가버렸다.
‘보름달이 뜨기 전에 한번 보고 싶구먼. 애라하 대위와 함께 와주었으면 하네.’
쪽지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발신인은 누기지? 쪽지를 뒤집어보았다.
‘백월의 파수꾼’
황제폐하셨다.
기차에서 내려 배로 갈아탄 뒤 백월의 항구 중 한 곳에 도착했다. 여독을 풀고자 근처 여관에 방을 잡았다. 여장을 다 풀고 보니 이미 시각은 한밤중이었다. 여관 주인이 푸짐하진 않지만 정갈하게 차린 밥상을 들여왔다. 나와 애라하 대위는 서로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인간이 생활을 영위해나가는 데 있어 필요한 세 가지 기본요소 의식주 중 식을 충실히 해나갔다.
“목이 너무 뻐근해.”
먼저 적막을 깬 건 애라하 대위였다.
“말을 많이 하는 것만으로도 목이 뻐근할 수 있는 거야?”
“보통은 그렇지 않죠.”
목이 안 뻐근한 게 이상한 겁니다. 그 각도로 꺾였는데.
아, 그러고 보니 오늘 기차 안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 안 해줬다.
“애라하 대위님, 황제폐하께서 우리를 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난 애라하 대위에게 역무원에게서 받은 쪽지를 건네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꺾더니만 이상한 신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이내 표정이 우스꽝스럽게 변하더니 곧이어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걸 왜 이제 보여주는 거야?”
목소리에도 온도가 있다면 방금 그 목소리는 필히 영하의 온도였을 거다. 까먹고 있었다고 솔직히 말하면 화내겠지?
“피곤해보이셔서 나중에 보여드리려 했는데 그게 지금이었을 뿐입니다.”
“우윽.”
고개가 오른쪽으로 꺾인 채 담이 찾아온 애라하 대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이 애처로웠던 나는 목마사지를 해주려 했으나 살짝만 힘을 주어도 고통스러워해서 그만뒀다. 방금 그 영하권의 목소리는 이것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식사를 끝마친 우리는 보름달이 뜨기 전까지 수도에 당도하려면 남은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만은 않았기에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손 중위, 나 머리에 혹도 난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