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의 수첩
애라하의 조부는 죽기 전에 자신의 후계자에게 수첩을 건네주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만약에 내 손녀가 다른 어떤 이와 이곳을 찾아온다면 이 수첩을 손녀에게 주게나. 단, 혼자 왔을 경우엔 주어선 안 되네. 반드시 누군가와 동행했을 때에만 이 수첩을 주어야 하네. 아, 그리고 내용은 녀석이 찾아오기 전까진 보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뜻은 이렇다. 애라하의 조부는 자신의 손녀가 언젠가는 조국을 구할 위인이 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필히 뜻이 통하는 동료와 함께 이곳에 찾아와 도움을 청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녀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그저 자신에 대한 궁금증 등을 이유로 한 개인적인 일로 찾아온 거라면 굳이 누굴 대동해서 오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
이 글은 내가 유격훈련 이틀째 날에 쓴 글이다.
유격 행군 24km를 걷고 발에 물집이 크게 잡혔다. 잡힌 것까진 괜찮았다. 이게 잡힌 상태에서 터져버렸고, 이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했다. 좀 더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의무대에 가서 드레싱을 받았는데 어째 더 아팠다. 결국 텐트지킴이가 되었고, 텐트 안에만 있기는 심심하고 해서 예전에 정제가 아이디어를 준 월령에 대해서 적게 되었다.
월령은 맨 처음 정제가 아이디어를 줬을 때는 ‘강력한 무기’라는 컨셉이었다. 그런데 이미 백월이라는 최강의 방패이자 창인 항공모함이 있다보니 둘 중 하나는 2인자가 되어야 할 상황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던 나는 행군을 하면서 월령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고 ‘특수부대’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달의 그림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각색해보았다.